예비군 5년차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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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던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정기차수에 무단 불참하여 동대로 부터 고발 및 지명수배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아왔었는데, 꿋꿋하게 버티다가 마지막 보충차수에 다녀오게 되었다.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날아오면 시간을 뺏긴다는 생각과 진주까지 다녀와야 한다는 귀찮음으로 비호감 지수가 극에 달하곤 한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가기 싫은 마음 억지로 추스려 새벽에 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고속버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곱게 물든 단풍들을 보면서,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살며 점점 메말라 가던 마음 한 구석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난 세상 모르게 일만 하면서 살아도 자연은 아직도 그 자리에 저렇게 버티고 있구나..

그러고보니 자연과 함께 호흡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 2005년 봄에 가족과 빈탄에 다녀온 후론 단 한번 짧은 여행조차 떠난적이 없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삶이 이런게 아닐런지 ㅋㅋㅋ...

 

예비군 훈련의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옛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군장교들의 예비군 훈련은 특기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군 시절 친구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올해는 보충차수에 다녀왔기 때문에 많은 동료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업계의 최전방에서 뛰고 있는 두 친구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훈련이었지 않나 싶다.

 

친구들과의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농담까먹기부터 시작하여 살아가는 이야기, 군시절 추억들에 관한 이야기, 취미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대화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 같이 공감했던 얘기가 있었는데, 먹고 사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과, 군대에 있던 사람들이 참 순박했다는 것이다.

사실 내 기억속에 군생활은 답답함으로 표현될 수 있다. 늘 그저 답답하기만 했었다. 제대의 그날까지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답답하기만 했었고, 군인들의 불합리하게만 보이던 사고방식과 태도에도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대하고 난 뒤에 내 삶은 점점 더 답답해져만 가는 느낌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마다 지금의 내 모습에 답답한 그림자가 드리워질 뿐이다. 농담처럼 "군에 있을 땐 정말 답답했는데, 제대하니까 더 답답해지는것 같아"라는 말을 했더니 두 친구가 웃으며 정확한 표현이다라며 맞장구 쳤다. 삶이 살아갈수록 답답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내 삶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아마도 군대에 갇혀 있다는 심리적 답답함보 험한 세상을 명쾌한 해결책 없이 살아간다는 답답함이 더 큰 불안감을 동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운지... 세상에 나와보니 불합리하고 앞뒤가 꽉 막혔다고 생각했던 군인들이 오히려 솔직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어떻게 하면 어리버리한 놈들 속여서 이득을 볼까만 고민하는 세상의 속된 무리들과 그들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죄송할 지경이니 말이다.

 

살면 살수록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점점 세상과 타협하는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을 보면 나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된다.

예비군 훈련이 귀찮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가끔 머리속을 쉬어가며 삶의 방향키를 조절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니 이제 1년 남은 나의 예비군이 아쉽게 느껴지네.. 역시 뒤집어 보면 영 다른 세상이 보이게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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