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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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에 하동관 이전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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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관


중학교 때 아버지 따라서 처음 가 봤던 그 곰탕 집...
명동 뒷골목에 이런 동네가 다 있었구나.... 참 옛날 동네다....생각하며 따라 갔었는데...
처음 그 맛에 놀라고 또한 그 양에 놀랐었다.

우리 부자는 참 대화가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 같다.
어려서 부터 엄한 아버지를 무서워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아버지 앞에 놓인 반찬에 손 가는 것도 내겐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런 아버지께서 가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셨다.
신문에 나온 영화 광고 (그러고 보니 요즈음에는 신문에 영화 광고도 잘 안 나오는것 같네)를 죽~ 펼쳐 놓으시고는 골라봐...하셨었는데...
평소 대화도 별로 없는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이 영 어색했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뭐든지 따라야 했다. 적어도 그당시엔 그랬다.

아버지와 같이 처음 본 영화가 아메리카 아메리카 (기억이 가물가물...)였다.
신성일 이보희 주연의 미국 이민 실패자들을 그린 영화...
올림픽 기간즈음하여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가 우리 가족의 이민 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도 어두운 극장안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아버지와 나의 어색한 분위기가 생생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닭살스러운 연인들의 영화 "사랑과 영혼" 도 난 아버지랑 같이 봤다.
ㅋㅋㅋ 남들이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참 친구처럼 잘 지냈구나...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 영화를 아버지랑 보면서 참 뻘쭘(버름했다가 표준어라고 하더만)했던 기억이 난다.

그 어색했던 아버지와의 영화 감상이 끝나고 나면 항상 들렀던 곳이 바로 하동관이었다.
아버지께서도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와 봤다고 하셨었는데...
오늘 신문을 보니 하동관이 1939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1938년생이시니 아버지도 하동관의 역사가 십수년이 흐른 후에 처음으로 가 보셨던 것이다.
그곳에서 아버지께서는 항상 보통을... 내것은 항상 특으로 시켜주셨었다.

그 땐 그 모든것이 어색하기만 했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법이 아닌었나 생각한다.
당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너무 멀어져버린 아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시기 위한 노력이었고, 사랑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지금 알고 있던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아버지께 정말 맜있다는 말씀 한 마디라도 드렸을텐데...

늘 그랬었지만 아버지랑 몇 시간을 영화를 같이 보고 하동관에서 곰탕을 먹었지만, 우리가 나눈 대화는 두 세 마디에 지나지 않았었다.

오늘 신문에서 하동관 이전소식을 접하니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난다.
하동관이 명동어딘가로 이전하면서 그 하동관 주인의 아드님이 대치동에 분점을 낸다고 하더라. 예전 그 맛이 지금도 똑 같을지 모르겠지만 대치동에 분점이 생기면 부모님 모시고 하동관 곰탕이나 먹으로 한번 가야겠다.

아파트 같은 단지에 살면서도 몇 달 째 얼굴도 못 보여드리고 전화 한통 안드리고 있는 아들이 해 드릴 수 있는 조그만 노력을 보여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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